우뇌 중심으로 생활하면 우뇌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좌뇌에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에 경험한 정보가 입력되어 있으며, 반면에 우뇌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정보가 들어 있는 뇌이다. 이 우뇌의 정보가 바로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선조로부터 계승한 정보를 이어받아서 활용하고, 또 직접 겪으면서 얻은 정보도 덧붙여 자손에게 남겨 주는 일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의 역할이다. 양뇌에 대한 이런 역할 부여가 뇌에 관한 나의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인생을 잘살고 못 사는 것은 우뇌와 좌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은 좌뇌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데, 우뇌에는 언어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뇌를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좌뇌 중심으로 생활한다면 우뇌, 즉 선천뇌의 존재를 무시하는 행위가 될 뿐만 아니라 매우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왜냐하면 좌뇌 중심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손해가 될까 이익이 될까 흑은 즐거울까 불쾌할까에 가치관을 두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나오는 호르몬은 대부분 아드레날린계에 속하는 투쟁 호르몬이다. 말하자면 늘 긴장의 연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파충류는 긴장의 연속 속에서 평생을 보낸다. 파충류는 감정이 없이 다만 생명 유지와 종족 보존을 위해 기계적으로 행동하므로 거의 투쟁 호르몬만으로 살아가는 셈이다. 대신에 쓸데없는 호르몬은 분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만 않으면 주어진 수명을 다할 수가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파층류는 나름대로 매우 잘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는 손해와 이익을 계산하면서 욕망에 사로잡히는 정도가 매우 심하다. 사자는 얼룩말 따위를 추격하여 잡아먹지만,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먹이 사냥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식량 저장이라는 이유로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이 먹이 사냥을 한다. 그러므로 동물과 비교하면 인간은 훨씬 더 많은 투쟁 호르몬을 분비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인간이 동물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금전에 대해서도 '오늘 하루 생활할 만큼의 돈만 있으면 된다'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한 달간 생활할 수 있는 돈으로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은 항상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욕망의 계단을 높이 쌓으면 서 끊임없이 투쟁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보다 더 몸에 해로운 경우는, 좌뇌에 의해 불쾌한 감정에 지배당할 때이다. 유쾌한 감정을 느끼면 뇌에서 뇌내 모르핀 분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몸에 좋지만, 불쾌하게 생각하고 화를 내고 미워하고 질투를 하면 아드레닐린계의 독성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독성 호르몬으로 몸을 움직이는 데 사용해 버리면 상관없지만, 감정에 지배당해 불쾌한 감정을 품고 근육을 사용하지 않으면 몸속에서 활성 산소가 만들어진다. 활성 산소는 유전자를 손상시키고 파괴해 버리며, 파괴된 유전자는 특수한 종류의 단백질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러한 단백질 덩어리가 암의 발생원이 되며, 고혈압이나 당뇨병도 유전자 손상으로 생긴다.
그러므로 불쾌한 감정에 사로잡혀 좌뇌의 사용에 치중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경우에는 우뇌를 좀 더 증요하게 생각하는 생활 방식이 필요한데, 문제는 지금과 같은 좌뇌 중심의 뇌 사용법을 어떻게 우뇌 중심으로 바꾸는가이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손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좌뇌의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는 것이다.
우뇌 중심으로 생활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뇌내 모르핀을 잘 활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뇌에서 분비되는 뇌내 모르핀의 양을 지표로 삼아 뇌내 모르핀이 많이 분비되게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뇌파로 말하면 알파가 방출되는 상태이다. 스님들의 생활 방식을 떠올리면 좀더 구체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스님 증에도 파계하여 속세 사람과 다름없이 생활하며 좌뇌 중심으로 사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스님의 생활 방식은 모든 면에서 우뇌 중심으로 생활하도록 되어 있다. 명상과 운동 그리고 식이 요법을 주된 치료 내용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바로 이 세 가지가 스님들의 생활 방식을 속세의 생활수준에 맞춘 치료법이다.
예를 들어 스님의 하루 일과는 수행하는 일로 짜여 있다. 절에 갓 들어온 스님이라면 복도에 걸레질을 하는 일부터 하게 된다. 조금 익숙해지면 천일기도를 하는데, 주로 산에 들어가 폭포수를 맞는다든가, 산사에 틀어박혀 기도를 하면서 수행하거나 때로는 단식을 한다. 이러한 일은 모두 운동과 명상과 식이 요법을 겸하게 된다. 이런 수행 과정을 마치면 곧이어 독경과 좌선 삼매의 일상생활로 들어가는데, 이 일상생활이 우뇌 중심의 전형적인 생활 방식이다.
그럼 우리들도 이 수도승처럼 생활해야만 하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특별히 스님 흉내를 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 핵심을 여러분의 생활 방식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즉 좌뇌의 흥분을 가라않는 방법을 도입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우뇌 중심으로 생활하면 우뇌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속삭임은, 주위가 밝은 낮에는 눈에 띄지 않다가 어두운 밤이 되면 개똥벌레의 꽁무니에서 빛을 발하는 반딧불과도 같아서, 좌뇌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을 때에는 분명치 않다가 좌뇌의 흥분이 가라앉으면 이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우뇌의 속삭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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